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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남대문 화재 143일 후

pyrosis 2008. 7. 1. 16:05

* 어두운 곳에서 찍은 사진이 많아 허접스런 사진이 많아요.
* 모든 사진은 nikonf5, nikkor35-70mmf2.8, reala 로 찍혔습니다.


2008년 2월 10일

먹고, 자고, 놀았던 기억 밖에 없는
길고도 짧은 설 연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고향에서는 마음은 편하지만 몸이 지루하고,
서울은 이와 반대이기 때문에
하룻밤 더 자고 월요일에 편하게 상경해도 될 것을
심심한 몸을 달래려 일요일 첫 차로 돌아오게 되었다.

두평 남짓한 작은 이 방이
몸뚱아리의 태초인 어머니의 자궁마냥 제일 편한 것은
자기 방을 가진 어느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가득찬 가방의 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남은 한가로운 저녁 시간에 게임을 즐기다
무료해져서 TV 채널을 돌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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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2일

동기들과 후배들의 졸업식을 뒤로 하고,
아침부터 사진기와 스케치 도구 등을 챙겨 회현역으로 향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자연스러운 것을 강조한다.
보여지는 그 자체에서 자연스러운 멋과, 단아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유연함은 구조적인 특징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일반적으로 구조체에서 힘의 흐름은
사람이나 가구 등과 같은 적재 하중과, 구조물 자체의 고정 하중이
중력에 의해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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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중을 slab(바닥판)이 받게 되고,
이 힘은 slab를 받치는 beam(보)로 흐르게 된다.
다시 이 힘은 column(기둥)을 타고 footing(기초)로 전달되어
지면으로 힘이 분산되게 된다.


쉽게 생각해서,
우리가 어릴 적 스케치북에 집을 그렸던 일을 생각해보면

네모난 집에 중간에 문을 그리고, 위에 삼각형으로 된 지붕을 그린다.

이 집에서 네모난 집의
세로가 column(기둥)이고, 가로가 beam(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이 처마라고 생각하고,
이런 집을 2개 포개어 놨다고 생각하면 남대문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하나의 집은 폭이 좁고 높이가 높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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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 - 처마     붉은색 - 보      검은색 -  기둥



우리나라의 건축물이 왜 자연스럽다고 표현하는지 다시 확인해보면,

처마의 힘을 기둥이 받는 것이 아니라, 1차적으로 beam(보)이 받게 된다
(처마의 무게는 대단하다 기와와 진흙, 보강용 cement로 인하여)

처마는 좌우 대칭으로 똑같기 때문에,
따라서 이 beam(보)은 안정적인 tension(인장)상태가 되고,
2차적으로 수직하중을 column(기둥)이 받게 된다.
따라서 남대문은 힘의 평행에 의한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의 건물이다.



잿더미가 된 남대문에 들어서자 남대문의 붕괴 mechanism이 보였다.

① 2층 바닥판 부터 화재가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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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불을 끄기 위해서 여러 소방차가 지붕쪽으로 집중적인 물 분사
   2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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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지붕이 냉각되고, 불이 타기 위한 산소가 공급될 수 없는 상태가 됨
   불길에 가장 가까웠던 여닫이 창문. 불길이 산소를 공급하려
   당겨서 창문을 여는 구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길에 의해 심하게 열렸다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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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따라서 불이 아래로 타는 상태가 발생
  기둥을 살펴보면, 위에서 아래로 타들어 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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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불길이 밖으로 못 뻗어나가고, 안의 주요 구조 부재를 태우기 시작
  처마의 힘을 tension(인장)상태로 이어주는 주보(girder)가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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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처마의 힘을 지탱하지 못하여 기둥이 부러짐
    주보(girder)가 끊어진 이후부터는 화재로 인한 붕괴보다는
    구조체끼리의 연결성이 끊어져서 붕괴가 시작
    사진들을 잘 보면 화재로 인한 것이 아니라, 부재들 간의 이격거리가 생겨서
    연결된 부분이 뽑혀 나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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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전소, 붕괴


간단한 그림으로 다시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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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이 들린 점은 신기했다. 그만큼 처마가 무겁다는 사실.

윗부분의 처마는 모두 탈락하여 땅에 떨여졌다.
땅에 떨어지며 아래 처마가 충격을 받아 쳐져 있었으며,
떨어진 것도 있고, 아직 매달려 있던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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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기둥이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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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처마가 떨어지며 아래 처마를 탈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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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솜보다 더 약한 상태였다
타고, 다시 물을 먹고, 타는 상황을 반복하며
울부짖었을 나무를 생각하니 정말 울 뻔했다


둘러보면서 느꼈지만.. 부분적 보수로 인해서 다시 정상 상태로 돌려놓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지어진 건물이라 다시 만들어야 하고, 그 기간이 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나는 마음이라든가, 누구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너무 아쉬웠다.




2008년 7월 1일

뛰어난 지도 교수님때문에 남대문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자세히 둘러 볼 수가 있었다.

그 현장에는 내가 보아왔던 현장과는 많이 틀린 모습이었다.
엄숙했고, 웃음도 없었고, 흔한 담배 꽁초도 없었고, 막걸리 병도 없었다.

그 날,
사진을 찍고 필름을 맡기고 현상과 스캔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고, 남대문에 대한 글을 쓰리라 다짐을 했었고,
가슴에 찬 울분이 너무 격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것을 탓하고 싶고, 저 것을 나무라고 싶고, 욕을 하며 침을 뱉고 싶었다.

밤에 글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다가
쓰여진 글이.. 칼 날이 날카롭고, 피가 서리고, 채워질 칼 집을 찾지 못해
백일 동안 심사숙고하여 다시 쓰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가진게 사람 몸뚱아리에 그 꼴에 가진 행동과 생각이라 43일이 늦어지긴 했지만,

대학생 1~2학년 때
한참 건축 설계와 사진에 대한 끝 없는 열의를 가지며, 그 곳을 자주 찾았던 그 시절에

서울역 13번 출구로 나와서 대로를 따라 걸어가다 지하도로 들어가기 전에 반겨 주던,
종로에서 술 처먹고 휘청휘청 거리며 걸어와
벤치에 누워 담배를 피며 바라보던 멋진 조명과 그 웅장함도,
누가 서울에서 어디가 가장 좋냐고 물으면
남대문-명동-종로로 이어지는 그 길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내 모습속에 있는,
또한 누군가의 기억속에 있을,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은 백일이 더 되어버린 시간속에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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