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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2010)

pyrosis 2012. 6. 3. 20:10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중에 하나다.

 

예전에는 에드워드 노튼의 영화가 그랬고, 지금은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가 그렇다.

 

에드워드 노튼은 비교적 무거운 역할에서 진가를 발휘하는데, 라이언 고슬링은 두루두루 탁월하다.

 

노트북에서 사랑스러운 연인의 따스함부터, 드라이브의 무시무시한 복수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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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어떤 계기로 로맨틱하게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라면

 

이 영화는 로맨틱한 감정으로 하게 되는 결혼이 그 후에는 어떤 과정과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아름다웠던 지난날들도 현실앞에서는 무색하고, 되려는 퇴색되기까지 한다.

 

결혼이라는,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이 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촛점을 맞춰야 하는게 사실인 것 같다.

 

사회적이라는 관점을 넘어 생물학적인 면까지 고려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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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 배우자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곤 하는데, 아직은 100%는 아닐 것 같다.

 

단적인 예로 고양이도 한마리 키우면서 열심히 보살펴주고 있지만 귀찮을 때가 가끔 있으니까.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결혼이라는 일도 노력이라는 후천적인 일이 필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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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반쪽이라는 인연은 두가지의 형태로 존재할 것 같다.

 

소설을 생각하며 주로 상상하게 해왔던 장면은

 

오후의 햇살이 아름답게 비치는 지하철이나 혹은 카페의 어딘가에서

 

두 남녀가 어느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에서 서로의 두 눈이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이 인연은 똑같은 노래의 똑같은 구절을 들으며, 찰나의 순간에 교감을 해야한다.

 

이 장면을 어떻게 써내려갈까? 아니면 이 운명스럽다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만남에 대해 '필연'이라는 커다란 틀을 끼워넣을 수 있을까?

 

첫번째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완벽하게 짜여진 운명의 모습이다.

 

옷의 단추처럼, 서로 마주잡은 깍지낀 손처럼, 일란성 쌍둥이의 그것보다 더한

 

운명의 실로 묶여진 그런 인연.

 

하지만 이런 인연은 만나는 순간에는 서로에게 강한 끌림과 더불어 거대한 파도가 들이치듯

 

운명의 커다란 사슬로 묶여진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정해진 운명은 그게 다인것 아닌가. 서로 잘 맞는 다는 것은 그것 뿐이라는 것.

 

두번째 형태를 말하기 전에,

 

1또는 100이라고 표현되는, '滿'의 완벽한 상태가 있다면, 

 

우리의 삶 각각의 인연에 100이라고 표현이 되는 그러한 합계가 있다면

 

첫번째의 인연의 형태는 처음부터 100이고 그 뒤로는 전혀 가감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두번째의 형태의 인연을 좋아한다.

 

서로가 빈 그릇으로 시작하더라도 상관없다.

 

제시와 셀린느가 그랬듯-

 

우리는 많이 달라도, 삶의 목표가 서로 다르더라도

 

먼 훗날의 모습이 서로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더라도

 

차 오르게 되고, 때로는 흘러넘치더라도 우리는,

 

인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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